미사리 라이브카페촌의 마지막 지킴이 [윤시내의 열애] 오균아대표

김원찬 전문기자 승인 2021.02.22 07:41 | 최종 수정 2021.02.22 07:47 의견 0

미사리 라이브카페의 성지 "열애"
라이브카페 열애 야경

추억의 미사리를 가다
취재를 위해 오랜만에 들른 미사리 라이브카페촌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 주변에 즐비한 아파트와 고층상가들. 예전의 모습은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았다. 코로나의 직격탄은 미사리도 예외는 아니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평일 저녁은 라이브 무대도 없고 한산했다.

라이브카페 ‘윤시내의 열애’ (이하 ‘열애’)의 오균아 대표를 만났다. 기자가 챙겨갔던 20년 전 라이브카페 ‘열애’의 건물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취재라기보다 이렇게 추억여행이 시작되었다. 기자와는 20년 넘게 친분을 쌓아 왔지만 그는 여전히 미사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고향집을 지키고 있는 부모님처럼 말이다. 그는 오래전에는 촉망받는 가수였고 지금은 30년 째 국민가수 윤시내의 매니저이자 아람미디어엔터테인먼트 대표다. 그리고 23년째 같은 자리에서 라이브카페 를 운영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40여개의 라이브카페가 성업하던 당시는 미사리의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우던 영광의 시절이었다. 매시간 가수들이 나와 노래하는 콘서트 천국이자 노래 백화점이었으며, 대한민국 유명가수들의 집합지이자 떠오르는 포크스타들의 경연장이었다. 1994년 ‘전인권클럽’이 문을 열며 라이브가 터전을 잡기 시작한 미사리는 1998년 ‘열애’ 등이 들어서면 전성기를 누렸다.

열애라이브카페 무대 전경

라이브카페 ‘열애’와 ‘쉘부르’
오균아는 미사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아직도 모두 떠나간 미사리를 지키며 라이브카페 ‘열애’와 ‘쉘부르’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물론 통기타 전설 송창식이 출연하는 라이브카페도 근처에 있지만 상호를 ‘록시’에서 ‘쏭아’로 바꾸면서 옛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라이브카페는 이곳이 유일해 졌다.

그동안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미사리에 쇼핑 복합몰 [스타필드]를 지으며 저보고 좋은 조건으로 라이브카페를 옮기라는 제의가 있었어요. 물론 저는 라이브카페를 팔고 가면 평생 편안하게 살겠죠. 그런데 거절했어요.” 마지막까지 이곳을 지켜야 하는 사명감일까, 도저히 미사리 라이브 카페 촌을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다는 그다. “쉘부르도 마찬가지에요. 식당을 하겠다며 임대문의가 많이 오는데 그렇게 간판을 내릴 수는 없잖아요. 코로나로 힘든 시기지만 적자를 보더라도 버티고 있습니다.“ 그는 덤덤하게 말했지만 얼굴에는 결기가 보였다. 말을 이어갔다. “미사리 문화를 다시 일으키고 우리 중년들에게 추억을 되돌려주는 것이 저의 마지막 꿈이에요.”

그마져 떠나가면 이제 미사리 라이브카페 문화는 종언을 고할 것이다. 그는 당시 라이브무대에서 추억을 함께 노래했던 가수들도 보고 싶다고 했다. 추억의 팬과 가수들, 그리고 하남시가 다시 합심하여 미사리문화를 복원하면 어떨까. 다행이 [송창식의 쏭아] 등 몇 군데 라이브카페는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포크페스티벌과 미니콘서트를 상시화하고 미사리음악을 전시하고 재현하는 것이다. 디너 형식의 공연과 팬 미팅, 신곡 쇼 케이스 등 수요 창출의 기대치도 높다. 라이브카페 ‘열애’만 하더라도 이제는 대중교통으로 닿는 곳이다. 전철 5호선 하남 풍산역에서 내려 걸어서 5~10분 거리다. 아직도 외국에서도 먼 지방에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며 참으로 반갑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열애’와 ‘쉘부르’는 당시 건축 제한 30평에 묶여 내부를 트고 천장을 높인 미니 3층 형태로 설계했다. 방음과 흡음 등 공연에 최적의 여건을 갖추기 위해 건축비가 일반 건물의 배 가까이 들어갔다고 한다. 그가 디자인한 두 건물은 건축양식도 세련되고 고풍스럽다. 실내는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의 축소판으로 관람 각도와 소리 전달력이 뛰어나다.

지금도 최상의 공연을 위해 음향, 조명 등 하드시스템을 완벽히 갖추고 음향감독까지 채용하고 있다. 이렇게 정성을 쏟아 200석 규모의 훌륭한 레스토랑 형 공연장이 만들어 졌다. 건물이 세월의 흔적으로 채색되며 라이브 명소로는 국내 으뜸이다.

“중년들이 갈 곳이 없어요. 문화를 즐길만한 곳도 없구요. 미사리는 중년들에게는 추억의 장소입니다. 그리고 당시 가수들에게도 추억이 스며 있구요.” 이들이 다시 미사리에서 함께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그의 희망이 아직은 허공에 맴돈다.

윤시내와 오균아의 인연, 그리고 30년 매니저의 신의(信義)
그는 1982년 ‘와일드캣츠’(들고양이들)의 임종임의 소개로 윤시내와 매니저의 인연을 맺었다. 윤시내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그녀는 음색과 창법과 가창력에서 독보적 영역의 가수다. 전 국민의 대표곡 ‘열애’는 아직도 듣는 이의 심장을 무너뜨린다.

1974년 영화 ‘별들의 고향’ 주제곡 ‘나는 열일곱 살 이예요’로 데뷔하여 ‘DJ에게’(1982년), ‘공부합시다’(1983년),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1985년) 등을 을 연이어 히트 시키며 대한민국 최고의 팝 디바에 등극한다. 2015년 18집 타이틀곡 ‘인생이란’ (김종환 작사, 작곡)으로 꾸준히 활동하며, 지금은 최백호의 곡으로 신보를 준비하고 있다.

20년 전에도 지금도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팬들을 만난다. 아직도 미사리에서 윤시내를 만날 수 있고 무대 가까이에서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은 최고의 행운일지도 모른다.

가수 나진기

아람미디어엔터테인먼트, 나진기와 모정애 전속가수로 활동 중
오균아대표는 윤시내 외에 정통 트롯스타 나진기와 모정애도 전속하여 매니지먼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나진기와 함께 생활 한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고 한다.

인터뷰 후 나오다가 트롯의 진정한 고수 나진기를 만났다. 알다시피 가요황제 나훈아의 사촌동생이다. 외모와 퍼포먼스와 음색은 피를 못 속인다. 그는 정통 트롯을 노래하는 드문 가창력의 가수다. 준수한 외모도 함께 갖춰 우리나라 남자 트롯의 계보를 이을 재목이다. 뛰어난 가창력은 물론이고 매너와 코디네이트 그리고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무대 연출력은 세련되고 멋스럽다. 작년에 선보인 베스트앨범은 라인업이 화려하다.

나훈아, 설운도, 김준규, 정의송, 송광호 등이 참여한 드물게 탐나는 앨범이다. 앨범 레퍼토리 중, 형 나훈아가 작사, 작곡한 ‘비오리’와 ‘들국화‘는 트롯이 나아갈 방향과 트롯가창의 정수를 보여준다. 지금도 매일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유튜브 방송을 통해 팬들을 만나고 있다.

정통트롯에 최적화된 목소리를 가진 모정애는 그녀의 대표곡 ‘인생’(김민우 작사, 김욱 작곡)을 노래하며 지금은 예술인들의 권익을 위해 한국연예예술인총연합회 남양주지부장을 맡아 활동 중이다. 오균아대표는 실력은 갖췄으나 형편이 여의치 못한 후배가수들도 꾸준히 라이브무대에 세운다. ‘KBS 아침마당- 도전! 꿈의 무대’ 5주 우승자 출신인 김연택 등이 대표적이다.

쉘브르 전경

가수 오균아. 그리고 그의 인생철학
그는 이미 1970년대 촉망받는 가수였다. 경남 거창출신인 오균아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의 배려로 서울 장충동녹음실에서 데뷔음반을 취입하게 된다. 가수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던 시절, 교장선생이 음반을 내고 오라며 6개월간 특별한 방학을 줘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큼 그의 스타성을 주변에서 인정했다.

당대 우리나라 최고의 레코드사인 ‘유니버셜’, ‘오아시스’와 ‘지구’에서 3집까지 음반을 발표했고, 당시 전성기를 누리던 조용필, 혜은이, 최헌 등 최고 인기가수들의 리사이틀 무대에 꾸준히 게스트로 출연했다.

그 후로는 지방 극장 쇼 기획과 1986년 'MBC 강변가요제' 출신 이순길을 키우며 매니저로 돌아섰다. 디지털시대에 아나로그 방식의 매니지먼트을 고수하는 그의 매니저 지론은 정직과 신용이다. 일찍이 우리 가요계에 30년간 변함없이 한 가수와 일하는 매니저는 없었다.

윤시내와 오균아. 이들은 매니저 시대의 롤 모델이자 산역사이다. 계약서도 없이 수 십 년간 비즈니스를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윤시내의 ‘인생이란’을 CD 데크로 들으며 미사리의 밤 강변길을 빠져 나왔다.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나. 아무리 몸부림쳐도 인생이란 알 수가 없네.’ 슬로우 템포의 노래가 그녀의 짙은 소울과 만나 처연하게 귓가에 울린다. 그 사이 긴 세월은 흘러 미사리 역사는 으스러지고 우리는 다시 옛 추억을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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