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미사리, 라이브카페 촌(村)을 기억 하십니까.

김원찬 전문기자 승인 2021.04.06 20:12 | 최종 수정 2021.04.06 20:56 의견 0
윤시내 의 열애


미사리- 그곳이 한때는 우리나라 라이브카페문화의 대명사였다. 노래를 사랑하는 중년들의 휴식처이자 추억의 장소였다. 지금은 흔적조차 희미해진 이곳을 지방은 물론, 먼 외국에서도 찾아와 당시를 회상한다.

하남지역 한강변을 따라 수많은 카페들이 마치 미니 건축물 전시장처럼 각각의 디자인을 뽐내며 줄지어 서 있었다. 국내 유·무명 통기타 가수들 뿐 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이 매일, 매 시간 이곳에서 미니 콘서트를 열었던 곳이다.

이종환의 쉘브르

그 미사리 라이브카페들을 기억 하십니까

라이브 카페 문화의 전진기지, 미사리의 역사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중년들의 잊히지 않는 역사가 이곳에 있다. 당시 미사리지역의 약 60개 업소를 비롯하여 수도권 지역에만 크게 7개 권역 (미사리, 팔당/양수리, 양평/퇴촌, 안산/시화, 일산/장흥, 분당/안양, 광릉내/포천)에 300개 정도의 업소가 성업 중이었고, 전국적으로도 도시 근교를 중심으로 약 1천여 개 업소가 추산되었다. 여기에 출연 가수만 해도 유·무명을 포함하여 8백여 명이 노래했다. 당시 이들에게는 주 활동무대이자 생활터전이었고 그 중심에 미사리가 있었다.

1970년대 통기타음악이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통기타 가수들의 주 활동 무대는 음악감상실, 음악다방, 대학축제 등이었다. 1980년대 통기타 음악이 가요계의 주류에서 밀려날 때 까지도 미사리 문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중음악이 다양하게 선보이던 1980년대 중·후반을 거쳐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미사리지역은 매운탕 집 등 식당 촌이 늘어서 있었다.

로마


그 후, 88서울올림픽 유치로 조정경기장이 이곳에 들어서면서 도로가 재정비되고 일반음식점에서도 가수들의 공연이 합법적으로 가능하게 되며, 1990년도 중반에 이르러서야 전원카페 형태의 라이브 레스토랑이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 시초가 록가수 전인권의 이름을 내 건 ‘전인권클럽’이었다.

처음에는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무명의 통기타가수들이 주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 70년대 통기타음악의 전성기를 열었던 인기 통기타가수들이 하나 둘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복고의 영향으로 1998년에는 통기타가수들의 모임인 ‘한국포크싱어협회’가 결성되며 많은 인기 통기타가수들이 전면에 등장하여 라이브카페 공연문화가 질적, 양적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필자도 함께 모임에 가담하여 미사리를 누비던 시절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록시

미사리문화는 어떻게 사라졌는가
미사리문화 초기에는 오직 통기타 한 대와 가수의 가창이 어우러지는 라이브의 긴장감과 보고 싶은 얼굴, 듣고 싶은 노래를 찾는 비교적 고소득 중년 지식인층의 문화갈증을 해소하며 독특하고 수준 높은 문화공간으로 자리했다.

그러나 경정경기장 운영 등으로 고객층의 성향 변화와 통기타 외 장르 가수들의 대거 진출, 차별화되지 않은 업소간의 경쟁 과열, 출연료 과다 지출 등으로 각 업소는 자멸의 길을 걷고 말았다. 일부 출연가수들도 책임에 자유로울 수 없는 업소와 가수간의 동업자 정신이 결여된 결과였다.

벤허

또한, MR, 엘프 등 각종 반주 장비의 등장으로 현란한 의상을 걸치고 입씨름하는 엔테테이너 경연장으로 변해 기존의 일반 주점무대와 차별성이 없어진 것 역시 미사리문화의 소멸을 의미한다. 적어도 가수들이 반짝이 옷을 입고 두 세평의 좁은 무대에 서서 가라오케반주에 노래하는 것은 이전의 미사리문화가 아니었다.

또한, 미사리지역은 매출에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다. 한강 오염 방지 등의 이유로 하남시 당국의 여러 가지 규제로 허가 평수가 대지면적 30평 이내로 제한되었다. 궁여지책으로 여러 개의 건물을 지어 하나의 업소로 통합 운영하는 형태까지 등장했다.

공간의 한계와 비싼 가수출연료에 따라 필연적으로 높아지는 음식과 찻값은 서울 도심에서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를 교통지옥을 뚫고 기꺼이 찾아오기에는 미사리만의 매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발렌타인

어디에 추억을 남겨 놓으셨나요.
당시 미사리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미니 콘서트 백화점이었다. 각각의 독창적인 건축양식으로 들어선 건물들의 외관은 문화특구로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승용차로 지나기만 해도 설레는 업소 간판들과 출연가수들의 이름을 길게 늘어뜨린 큼지막한 현수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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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카페에서 누구와 찻잔을 앞에 놓고 누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었을까. 포크와 팝 발라드와 트롯장르까지 많은 가수들이 미사리 라이브 무대에 섰다. 신청곡을 남기고 노래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 보자.

샤델리

한승기 김명상 수와진 송창식 둘다섯 장은아 사월과오월 신계행 양하영 유익종 남궁옥분 채은옥 임지훈 홍민 이태원 김승덕 강은철 김동환 하사와병장 백미현 이재성 김재희 양현경 이정석 심명기(해바라기), 여행스케치 하남석 녹색지대 박광현 임창제 이치현 장철웅 박용강 윤태규 소리새 가람과뫼 이진관 백영규 조덕배 추가열 등 포크 계열의 뮤지션들과, 이용 구창모 진미령 위일청 임주리 사랑의하모니 장계현 박상규 김연숙 장현철 진시몬 이상우 전원석 조정현 이범학 높은음자리 박용강 이규석 길은정 임병수 노사연 유열 박상민 심수봉 전유나 고병희 김민우 우순실 박완규 녹색지대 조관우 임희숙 프레슬리 김명상 최성수 변진섭 사랑과평화 인순이 박정운 황규현 장미화 강수지 김국환 조항조 주병선 김난영 이광조 김창남 박강성 강승모 윤시내 최헌 김상배 옥희 최유나 최진희 이덕진 성진우 등 팝 발라드 가수들,

그리고, 오은정 태진아 전미경 한혜진 김수희 김지애 송대관 현숙 등 트롯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호명할 수 없는 많은 가수들이 미사리 무대에 올랐다.

엉클톰

당시, 손님들의 신청곡을 정성껏 들려주던 미사리 노래꾼들은 또 어떤가. 언더그라운드 포크스타 권용욱 허송 추두엽 이태종 이후종 등을 비롯하여 김지영 김신우 박정은 이주영 휴먼보이스 정선연 이영준 김재섭 박승조 김백기 윤준 이창휘 김정훈 제인 조진우 김신우 올웨이즈 박희수 이미영 탱크 한상현 우종민 장대희 최임호 이대헌 유한명 최윤수 이상혁 신민혁 김정섭 김진옥 한동수 이남오 영우 조장원 김광선 블루문 윤상찬 박순희 김지연 지서련 임강구 지우 등

모두 미사리콘서트의 주역들이었다. 혹시 기억나는 이름이 있는가. 그때 출연했던 가수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20년이 훌쩍 넘은 세월의 간극을 두고 이제야 추억을 되살린다.

유일하게 이곳을 지키고 있는 미사리 라이브카페 ‘열애’의 주인장 오균아가 한 말이 귓가에 맴돈다. “작년 말경에 손님이 혼자 오셨는데 모처럼 한국에 들러 제일 먼저 찾은 곳이 미사리라 했어요.” 미국에 이민 간 후, 1990년대 한참 미사리를 찾았던 추억이 그리워 한 걸음에 달려왔다며 감격해 하는 모습에, 미사리를 지키기를 정말 잘했다는 자부심이 들었다고 했다.

시간을잃어버린마을

미사리 라이브카페. 그 기나긴 생명력
그는 아직도 ‘열애’와 ‘쉘부르’ 등 라이브카페 두 곳을 운영하며 미사리 부흥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하남시와 연계하여 미사리축제를 기획하고, 미사리 라이브 카페 자료를 수집하여 작은 기념관을 만들 계획이다.

[추억! 미사리가 답하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당시 출연가수들의 ‘어게인’ 무대도 준비하고 있다. 당시 미사리는 기네스에 오를 정도로 세계에 유래가 없는 음악 청정구역이었다. 지금의 미사리는 너무 많이 변했다.

열린음악회

근처에 고층아파트가 즐비하고 ‘스타필드’ 같은 다목적 건물도 들어섰다. 그래도 다행히 몇몇 라이브카페가 남아 우리의 추억을 지키고 있다. 마치 고향 동네 어귀의 허름한 상점처럼 정겹게 말이다. 대부분 라이브카페들은 명멸해 갔지만 아직도 이곳은 송창식(쏭아 / 구.록시)과 윤시내(열애)가 노래한다.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박진광도 달랑 통기타 한 대와 어울려 신나게 노래하고, ‘벤허’의 최고 인기스타였던 권용욱 역시 우리의 신청곡을 변함없이 들려준다. 세월이 흘러 찾아가도 추억의 장소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면 행복하지 않는가. 이번 주말 코로나를 피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미사리를 한번 찾아보자.

미사리 라이브카페 명함

(김원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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