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콘서트와 페스티벌 라인업부터 챙기느라 바쁜 시즌이지만, 올해만큼은 플레이리스트에 판소리 한바탕을 넣어 보는 건 어떨까. 국립극장이 12월 19일과 20일, 이틀 동안 달오름극장에서 송년판소리를 올린다. 이 무대는 1984년 시작된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4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으로, 말 그대로 소리계의 레전드들이 총출동하는 자리다.
완창판소리는 말 그대로 판소리 한바탕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프로젝트다. 지난 40년 동안 100명의 명창이 이 무대를 거쳐 갔다. 장르로 치면 힙합의 풀버스 롱버전, 록 팬들이 사랑하는 라이브 풀셋 같은 느낌이다. 오래 버틸 체력과 내공, 관객을 끌고 가는 스토리텔링이 없으면 소화하기 힘든 무대라, 국악 팬들에게는 일종의 “성지” 같은 공연이기도 하다.
이번 송년판소리는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보유자 6명, 지방무형유산 보유자 5명, 오랜 시간 완창을 지켜 온 고수 4명이 한꺼번에 모인다. 여기에 완창판소리의 사회를 맡아온 진행자들도 대거 출연해, 40년 역사를 한 번에 훑어보는 무대가 된다.
19일에는 김수연, 윤진철, 정회석, 김세미, 모보경이 무대에 선다.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 수궁가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명장면들이 라이브로 펼쳐진다. 춘향가 하루 가고에서 기생점고 대목, 심청가 초앞과 심봉사 젖 동냥 나가는 장면, 흥보가 돈타령, 적벽가 조조 군사 조련과 조자룡 활 쏘는 대목, 수궁가 말을 허라니 허오리다와 더질더질까지, 한 번도 안 들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듣는 사람은 없다는 명대목들이 이어진다. 북은 조용수와 김태영이 잡고, 유영대, 정회천, 유은선이 관객과 소리 사이를 자연스럽게 이어 준다.
20일에는 김영자, 김일구, 정순임, 성준숙, 유영애, 조소녀가 나온다. 수궁가에서 토끼 배를 가르고 세상으로 나오는 장면, 춘향가 오리정 이별, 적벽가 적벽강에 불 붙고 이어지는 장승타령, 심청가 추월만정과 황성으로 향하는 대목, 흥보가 제비 강남 가는 장면과 박 타는 대목, 적벽가 동남풍이 비고 자룡이 활 쏘는 클라이맥스까지, 말 그대로 판소리 베스트트랙이 총집합한다. 북은 조용안과 이태백이 맡고, 사회는 김성녀, 최동현, 유은선이 담당한다.
이번 공연에는 기술 쪽 피처링도 있다. 국립극장은 디지털 기반 전승·기록 방식을 도입해,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 고 송순섭 명창의 소리를 홀로그램으로 구현한다. 직접 만날 수 없는 거장의 소리를 입체 영상으로 다시 불러내, 현장에서 살아 있는 전설을 보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여기에 역대 출연자들의 영상도 함께 상영돼, 40년 동안 이 무대를 지켜온 명창들의 역사가 스크린 위에서 펼쳐진다.
전석 3만원, 예매와 문의는 국립극장 홈페이지와 전화(02-2280-4114)를 통해 할 수 있다. 연말 송년 회식 대신, 귀와 가슴이 꽉 찬 송년 공연을 찾고 있다면, 올해만큼은 달오름극장에서 명창들의 라이브를 들어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