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과 대중가요, 댄스와 발라드의 경계를 넘나들며 '한의 정서'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음악만 떠올린다. 그러나 그 정서는 몸의 춤과 더불어 이미지 속에서도 살아 숨 쉰다. HNH 갤러리에서 열리는 양재문 개인전 '비감소월(悲感素月)'은 그 정서를 시각의 언어로 담아낸 전시다. 비천몽 시리즈를 통해 신명어린 춤을 빛으로 표현해 왔던 작가는, 이번에는 그 춤이 남긴 여운을 달빛 속에 가라앉히며 한 곡의 조용한 노래처럼 풀어낸다.

비천몽이 북장단과 관현악이 울리는 무대 위, 하늘로 치솟는 승무의 동작을 떠올리게 했다면, 비감소월은 노래가 끝난 뒤 남는 여운의 시간에 가깝다. 공연장을 나온 관객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귓가에 계속 맴도는 멜로디처럼,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신명의 환희 대신 그 뒤에 찾아오는 묵직한 정적과 그리움을 담아낸다. 제목 속 '비감'은 슬픔과 그리움의 심연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소월'은 그 애틋함을 비추는 밝고 흰 달빛을 뜻한다.

양재문은 오랫동안 춤과 음악을 모두 품고 있는 장면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아왔다. 몸이 회전하는 궤적, 치맛자락이 그리는 곡선, 북의 두드림과 가락의 호흡을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그의 화면에는 자연스럽게 리듬이 깃들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그 리듬의 속도를 한껏 늦춘다. 빠른 템포의 굿거리나 휘모리에서, 느린 진양조와 같은 호흡으로 옮겨가는 느낌이다. 관람자는 작품 앞에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늦추고, 빛의 장단을 느끼게 된다.

이번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달항아리는 음악으로 치면 장단이 담긴 북과 비슷한 위치에 서 있다. 비어 있는 듯 보이는 그릇 안에는 사실 수많은 소리와 숨이 응축되어 있다. 작가는 달항아리 표면에 머무는 빛과 그림자를 통해, 한을 넘어 신명으로, 다시 명상으로 이어지는 정서의 순환을 그린다. 오래 들은 민요 한 구절을 흥얼거릴 때처럼, 작품 앞에서 떠오르는 감정은 개인의 기억과 민족적 정서가 함께 얽혀 있는 복합적인 느낌이다.

가요와 국악을 막론하고 오늘의 음악은 빠른 소비의 흐름 속에서 소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한 곡을 반복해 듣고, 한 소절을 곱씹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그런 시대에 '비감소월'은 한 번쯤 곡을 멈추고, 가사의 한 줄과 멜로디의 한 구절을 다시 떠올려 보자고 제안하는 전시다. 화려한 사운드 대신 고요한 여백이, 강한 후렴 대신 조용한 잔향이 중심에 놓인다는 점에서, 이번 작업은 음악적 감수성을 가진 관람객에게 특히 깊게 다가온다.

전시는 12월 15일부터 20일까지 일반 관람, 22일부터 30일까지는 예약 관람으로 열리며,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연말 공연과 송년 무대 준비로 분주한 음악인들에게도, 잠시 악기를 내려놓고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고 싶은 청취자들에게도, 이 전시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조용한 레코딩 스튜디오 같은 시간이 될 것이다. 한과 신명, 어머니의 기도, 영혼의 그리움이 빛으로 녹아 있는 이 무대에서, 각자는 자기만의 노래를 다시 작게 흥얼거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