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법대를 나와 여행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김영수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펴냈다.
지금 그에게는 치매에 걸린 아내와 사업실패로 온 넉넉잖은 살림살이와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나이, 세 가지 악재에 휩싸여 있다. 그럼에도 그는 주눅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세상을 향해 담대히 나갈 성경과 시가 있기 때문이다. 남들은 치매에 걸린 아내를 요양시설이나 병원에 입원시키라 하지만, 김영수 시인은 그럴 수가 없단다. 가끔은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밥 해주고 빨래 해주며 목욕시켜주는 수고가 오히려 행복하단다. 사랑의 완성은 책임에 있다고 하지 않든가?
그는 문학과 함께 그림을 그린다. 미술은 최고의 치료방법이다. 스케치북에 앉는 순간, 4B연필로 스케치를 하는 순간, 붓을 드는 순간, 세상 모든 번뇌는 사라지고 그리고 싶은 그림에만 몰두하게 된다. 그래서 그 그림이 완성되기까지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아무리 좋은 구경꺼리도 필요가 없어진다. 내 종이이기 때문에, 내 그림이기 때문에 몇 번이고 지울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몇 장이고 구겨 내던질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포기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자유가 있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최고의 목적지가 아닌가.
김순진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집에서 나는 큰 시인 한 분을 발견했다. 그이 시에서 폭포수 떨어지는 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참선을 마치고 나온 수도승의 기가 느껴진다. 이제 그는 누구도 부인 못할 시인이 되셨다. 이 시집 속의 시편들은 모두 그를 시인이라 부르기에 충분한 출중한 시편들이다. 김영수 시인의 언어는 ‘봄이 오고 있음을 아는 나목의 언어’다. 불온한 세상을 견디는 나목의 의지가 묻어나온다”고 평한다.
김영수 시인은 정말 소탈하다. 굴지의 여행사를 경영하다가 갑작스런 세금징수에 부도가 나 양평으로 이사하면서, 강물과 풀꽃을 본 후 내신 수필집 ‘서울사람 시골 살기, 시골사람 서울 출근하기’는 그가 환란 속에 마음을 추스르며 새롭게 살아가는 해법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 이후 우리나라 해안을 돌며 역사적인 사람들의 면면을 찾아내 작가의 특별한 감성으로 풀어낸 ‘해안선에 남겨진 이름들’이란 산문집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여운을 주는 책이었다. 첫 시집 제목은 ‘지금 내 눈앞에 조용히’로 손아귀에 쏙 들어오는 아주 아담하고 앙증맞은 양장본 시집이다. 끊임없이 창작을 하는 김영수 시인에게 우리는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다.
김영수 시인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나와 계간 스토리문학으로 등단한 작가다. 그의 시는 한겨울을 견디고 올라와 꽃대를 밀어올리고 있는 상사화를 연상케 한다. 시적 완성도, 선의 경지에 가까운 내면의 안정감, 그리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물과 자연에 대한 그윽함은 단번에 이번 시집을 읽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