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에세이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의 권지명 저자를 만나다..

'첫눈에 반한 그 남자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습니다'

대한가요신문 승인 2023.07.31 11:38 의견 0
▲ 남편과 함께 남산에서 (사진= 권지명 제공)

(서울=대한가요신문) 노익희 기자= 녹음짙은 아름다운 7월의 여름, 에세이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의 작가이자,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로 활동하는 권지명 작가를 만나 그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 부모님 30년, 본인 23년을 사회복지사로 살아오셨어요, 23년 전이면 사회복지사라는직업이 조금은 생소했을텐데요,그 직업을 선택하고 감당하며 살아온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서울에서 호떡장사를 하시던 아버지가 선배, 친구들의 도움으로 48세 늦은 나이에 대전 아동복지시설 종사자가 되셨습니다. 생계형사회복지사라고 할 수 있죠. 잠자리가 해결되었고 세끼 식사가 해결되서 그것에 감사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사회복지사가 되지 않으셨다면, 저도 사회복지사가 되지 못했겠죠. 사회복지사 부모님 딸로 30년을 살다보니, 어떤 사명감이나 특별한 계기없이 중 1때부터 아동복지시설 안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고마운 존재가 되고 싶었고, 남을 도와주는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사회복지사인 부모님의 삶을 보면서 제 삶에 사회복지가 저절로 스며들었다고 생각됩니다.

2. 장애인의 적은 사회복지 종사자와 가족이라는 말을 하셨어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을까요?

대전 사회복지관에서 일하다가 2005년부터 서울에서 장애인복지기관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요. 그 전까지 저에게 있어 장애인은 그저 도움을 줘야하는 존재였어요. 서울에서 만난 장애인들은 이미 장애 당사자주의를, 자립생활운동을 펼치며 지역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죠.

그때 들었던 얘기가 ‘장애인의 적은 사회복지 종사자와 가족’이라는 것이었는데요.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가깝고 강력한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죠. 그렇게 그들의 정신세계는 이미 서구의 장애 인권 수준이었지만 삶의 수준은 높지 않았던 때였는데요.

특히 외모가 정갈한 장애인은 많이 볼 수 없었어요. 그러던 중에 제 앞에 나타난 남편은 정장차림에 머리에 무스를 바른 것이 꽤 멋을 부릴 줄 아는 센스있는 남자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 깔끔한 외모에 반하게 된거죠.


3. 남편분은 어떤 분이세요? 남편분과의 만남에 대해 듣고 싶네요.

남편은 강원도 인제 산골 마을에 태어났어요,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고, 똘똘하고 건강했던 남편은 제법 제 몫을 하면서 자랐지요. 11세부터 몸이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횡단보도를 건널 때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서 덤프트럭이 경적을 울려 대며 달려오고 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순간 아슬하게 몸을 굴려 덤프트럭을 피할수 있었어요, 그런데 조금씩 몸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온 몸의 힘이 빠지면서 고 1때 근육장애 진단을 받았어요. 집안에 갇혀지내다가 전동휠체어를 타게 되면서 역동적인 삶을 살게 됐는데요.

인제군 지체장애인협회에서 일하게 되었고 사회복지 공부도 하게 되었대요. 그러다가 2006년 수해 때 어머니를 잃고 절망 속에 살았던 남편을, 장애인 재단사업설명회에서 남편을 처음 마주쳤고, 바쁜 일로 급하게 자리를 일어나게 되어 무척 아쉬웠는데,이틀 후 제가 근무하던 한벗재단에서 마련한 일본 근육 장애인 초청 간담회에서 다시 남편을 만나게 됐어요.

저의 적극적인 구애로 만난지 2개월만에 결혼을 결심하고, 1년이 되지 않아 결혼식을 올렸어요. 결혼 후에 저랑 같은 직장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보조기구 유통업을 시작했다가 망하고 한국근육장애인협회장으로 5년 일했어요. 지금은 서울관광재단 다누림관광센터장으로 관광약자를 위한 여행지원사업을 하고 있어요.

4.‘복 받은 겨’,‘복 받을 겨’,라고 지인들께서 말씀하셨다고...두 분중 어느분이 '복'을 받으셨나요?

결혼 전에 장애인 부부를 찾아다니면서 조언을 구했는데, 그 때 들은 얘기였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결혼할 경우 장애인에게는 '복 받은겨', 비장애인에게는 '복 받을겨'라고 한다는 거에요. 제가 결혼 할 때 많이 들었던 얘기였고 저에게 힘을 줬던 말이기도 해요. 근데 이제 생각해보니까 오히려 독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해요. 항상 난 '복받을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착각하면서, 어려움을 회피하면서 살아온 것 같아요.처음에는 남편하고 만난 제가 복 받은거라고 생각했어요.

남편의 신앙 간증을 들으면서, 지혜로운 삶의 태도를 보면서 이 남자 옆에 있는 게 나에게 축복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제가 뭘 해서가 아니라, 남편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럴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살다보니 그냥 평범한 남자였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저는 남편 덕분에 복받은 삶을 살아왔더라구요.

5. 가족상담을 받으셨어요,‘가족세우기’ 프로그램에 참여하셨는데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결혼 7년만에 이혼 위기를 겪게 되었는데요. 사실 장애인과 결혼한 저에게 사람들이 위로와 격려를 많이 해줬는데, 그런 제가 남편과 이혼을 하게 되면 어떤 질타를 받게 될지 스스로 많이 두려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해야겠다고 생각하니까 진짜 이혼으로 마음이 달려가더라구요. 친정엄마가 진심인거 같으니까 아는 상담소장님을 연결해주셨는데 그 분이 그러시더라구요.

법적인 이혼은 진정한 이혼이 아니다. 마음의 이혼을 해야 이혼 후에도 살아낼 힘이 생긴다고요. 그래서 이혼을 잘하기 위해 참여한 가족세우기 프로그램에서 반전이 일어났죠. 제가 힘들었던 건 남편 때문이 아니라 저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남편도 그간 저를 아내가 아니라 엄마로, 엄마같은 사랑을 요구해왔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서로 미안해졌고, 고마워졌고, 그렇게 다시 마음을 바꾸게 되었어요.

※가족세우기:독일의 가족치료사 헬링거가 시작한 가족상담의 한 모델로서,내담자가 신체적 표현을 통해 자신의 가족관계를 공간에 표현하도록 함으로써 치료적 효과를 거두려고 하는 해결 중심적 단기 치료의 하나.

6.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글을 쓰셔서 책으로 출간까지 하셨어요 출간 동기는?

2018년에 직장을 그만두고나니, 재취업하기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남편한테 나 앞으로 뭐하고 살지? 물어보니까 저한테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구요. 나에게 그럴 자격이 있나? 장애당사자도 아니고, 좋은 직장동료도 아니었고, 나야말로 남편을 포함한 장애인의 ‘적’이었는데, 망설이는 나에게 남편은 ‘나랑 살아온 15년 만으로도 충분한 자격’ 이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강사양성과정을 마치고 강사가 됐죠. 비장애인 동료와 일하면서 장애인근로자들이 겪을 수 있는 직장내 고충, 비장애인 여성과 살면서 남편이 겪었던 고충, 그런 이야기들을 꺼내어 세상에 들려주고 싶었어요. 근데 강의를 하면서 계속 아쉬운 것이, 제가 정말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러다가 남편이 일했던 한국근육장애인협회의 ‘마음근육키우기 프로젝트’ 가족상담을 받으면서 <보통의 가족이 가장 무섭다>의 저자, 김미혜 교수님의 권유로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지요,제가 쓴 글을 온라인상에 올리는 과정은 크나큰 치유의 시간이 되었어요. 후회되었던일, 잊고 있었던 일들, 용서받고 싶었던 일들을 기록하면서 내 안에 무거운 짐을 벗는 것 같았어요. 엉킨 실타래가 풀리듯, 과거에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들이 이해되고, 이해하고 싶지않은 것들이 이해되면서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나아갈 힘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책을 내게 됐지요. 작년 12월, 1년만에 책이 나왔고 그 후로 전국에 책을 알리러 다니고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나이 오십이 가까워지면서 저는 이제 늙었다고, 늦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랬던 제가 1년 만에 강사가 되고 2년만에 작가가 됐어요. 그리고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고 있어요. 놀라운 변화에요. 책을 내고 여기저기 북토크 콘서트를 다니고 있는데요. 그때마다 남편이 함께 가줘요. 부부가 함께 장애인식개선 활동을 하게 된거죠.

7.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로써 현장에서 전달하고픈 내용과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요?

직장 내 장애인식개선교육(법정의무교육), 장애인 활동지원사 양성교육, 근로지원인 양성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비장애인으로써, 장애인의 아내로써, 동료로써 살아온 다양한 시선에서 메시지를 주고 싶어요. 앞으로도 계속 책을 낼 것이고요.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로 오랫동안 활동하고 싶습니다.

8.감사를 전하시고 싶은 분들께 한 말씀 해주시겠어요?

제가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의 ‘당신’은 남편이었어요. 그런데 책을 쓰면서 알게 된 ‘당신’들이 참 많더라구요. 가족을 포함해서 제 인생의 여러 가지 그림들을 함께 그려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하고요. 또 북콘서트를 하면서 독자들과도 만나게 되는데, 그 분들에게도 감사하죠.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제 책이 2023년 문학나눔 도서로도 선정되었는데요, 제 책을 통해 독자분들이 '보통의 삶을 꿈꾸는 장애인의 삶'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신다면 더 없는 기쁨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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