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무엇이 세계인의 보편성을 얻게 했나?

엄태웅 기자 승인 2021.05.14 09:39 의견 0

-아카데미는 ‘미나리’의 무엇에 열광했는가

지난해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에 이어 올해는 영화 ‘미나리’가 ‘K무비’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 ‘미나리’는 1980년대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 아칸소주로 이주한 한국 가족의 정착해가는 과정을 다룬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나리’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 조연상, 음악상, 각본상 등 총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그런 가운데 윤여정(74)이 지난 4월 25일(현지시간) 미국 LA 시내 유니온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인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6개 부문에서 후보로 올라 한 개의 상을 받았지만, 할머니 순자를 연기한 윤여정은 미국 시상식 예측사이트 골드더비과 로튼토마토에서 수상이 가장 유력시된다고 예상할 만큼 독보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윤여정은 이미 미국 배우 조합상(SAG)과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포함해 ‘미나리’로 총 38개의 상을 타 수상 가능성은 매우 높게 접쳐지고 있던 상태였다.

그렇다면 아카데미가 왜 한국의 노배우에게 주목하게 됐을까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영화 내에서 찾아질 수 있다. 영화내에서 세계적인 보편성과 공감대 형성을 찾기 전에 타이밍이라는 환경적 요인도 수상에 매우 유리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는 코로나19라는 환경으로 인해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주류 상업영화들이 별로 제작되지 못했다. 제작이 된다 해도 극장에 걸릴 수가 없어 넷플릭스 등 OTT로 편성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저예산 영화이면서 작품성과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 주목받기에 좋았다. 제작비 20억원 정도의 ‘미나리’는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미국내 인종주의에 대한 반대정서가 그 어느 때보다도 광범위하게 형성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인종주의에 대한 반작용은 더욱더 다문화와 인권, 젠더 이슈를 부각시키기에 좋았다. 미국에서 타자인 한인의 미주 적응기를 다룬 ‘미나리’로 이런 분위기의 수혜를 조금은 봤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작품이 좋지 않았다면 윤여정은 상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운여정의 여우조연상 수상 자체가 좋은 캐릭터를 연기로 잘 표현했다는 증거다. 한마디로 순자를 보편적인 인간애를 보여주는 캐릭터로 승화시켰다.

그럼 영화 ‘미나리’는 어떻게 세계인의 보편적인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정이삭 감독의 인터뷰에서 그 일단이 드러난다. 정 감독은 “처음에는 개인 이야기로 시작했다. 여기까지 올 줄 몰랐다”면서 이민자 가정의 미국 적응기라는 점에서 보편성을 얻은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정 감독은 “희망에 대해 느꼈으면 좋겠다. 코로나19로 세계적으로 어렵지만 ‘미나리’에 희망이 깔려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서로가 있다는 점이다”면서 “‘미나리’가 첫 해에 수확이 안되고 두번째 해에 수확이 되듯이, 우리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우리 세대에 와서 그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윤여정도 인터뷰에서 “정이삭 감독의 정직하고 진실함, ‘미나리’ 대본에 담긴 따뜻함에 끌려 출연하게 됐다. 미국에서 고통받고 차별받는 사람들로 묘사되는 여타 영화 속 이민자들의 모습과 달리 미나리 속 그것은 한국과 미국을 잇는 다리 같았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과거에는 대본에 있는 특정한 것을 노렸다. 60세 이후 작품 선택의 기준이 완전히 바뀌었다. 사람이 좋아야 한다. 오래 살아 대본을 보면 진짜인지 안다. ‘미나리’는 순수하고, 진지하고 진짜 얘기였다. 스킬풀한 게 아니다. 대단한 기교와 가식 있는 작품이 아니다. 그게 늙은 날 건드렸다”면서 “정이삭 감독은 한국 사람이 미국 교육을 받아 세련됨을 보여준다. 43살인데 내가 존경한다“고 했다.

윤여정은 ”왜 ‘미나리’가 인기가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본을 잘썼다. 할머니, 부모가 희생하는 것은 세계 공통이다. 그것이 사람들을 움직였다. 할머니는 손자를 무조건 사랑한다”고 답했다.

‘미나리’에는 미국 아칸소의 외딴 곳으로 이주해 농장을 꾸미려는 의지가 강한 남편 제이콥(스티븐 연)과 ‘바퀴 달린 집’이라고 불평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아내 모니카(한예리), 의젓한 큰 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장난꾸러기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이 등장한다. 여기에 어린 손자를 돌보기 위해 함께 살게 된 외할머니 순자(윤여정)는 ‘미나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인물이다.

이렇게 다섯 식구가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하고 갈등하며, 결국 가족의 연대감을 이뤄가는 방식은 세계인의 공감을 얻을만하다. 이들의 삶과 정착기는 서양과는 다른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정서에 기반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서양인들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내용이다.

이 가족은 위기에 처하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미나리는 어디에 있어도 잘 자라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든 건강하게 해줘”라는 순자의 대사처럼 이 가족도 결국 낯선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만다.

마지막 장면에서 제이콥이 아들 데이빗과 함께 순자 할머니가 뿌린 미나리가 확 살아난 것을 보며 “할머니가 자리를 참 잘 고르셨다”고 말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주제 문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정덕현 평론가는 ‘미나리’는 여성서사로도 읽힐 수 있다고 말한다. 제이콥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남성서사와 순자가 보여주는 여성서사의 대비를 통해 삶의 지혜를 한번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제이콥은 불모지를 개척하려한다. 프론티어다. 물이 안나오면 끝까지 파내려간다. 그렇게 해서 농장을 일궈 큰 돈을 벌려고 한다. 전형적인 이전 세대의 방식이다. 그런 제이콥은 가부장적이면서 자본주의적이다. 반면 순자는 물을 파는 게 아니라 물이 있는 곳으로 가 미나리를 심는다. 또한 돈이 아니라 사람을 우선시한다.

LA에서 병아리감별사로 10년간 일했던 제이콥이 맛이 없다는 이유로 수컷이 바로 분쇄기로 보내지는 걸 두고 아들 데이빗에게 “우리는 꼭 쓸모가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반면 순자는 어릴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마음껏 뛰어 놀지도 못하고 계속 병원에 다녀야 하는 데이빗에게 “프리티 보이(Pretty boy)”라고 말하자, 데이빗이 큰 소리로 정색을 하며 “I‘m not pretty, I’m good looking!”이라고 말한다. 아버지로부터 가부장적인 교육을 받은 티가 난다. 하지만 순자는 점점 건강을 되찾아가는 손자 데이빗에게 “스트롱 보이(Strong boy)”라고 부른다.

순자는 미국의 딸에게 오면서 고춧가루와 참기름, 멸치를 싸오고 가족과 화투도 치고 욕도 하는 할머니다. 전형성을 벗어난 할머니 캐릭터지만 공감할만한 요소는 충분히 있다. 하지만 순자는 “미나리는 원더풀이란다”라고 말한다. 순자는 미나리요 원더풀이며 지혜이자 대안이라고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 이것이 전지구적 위기 상황을 맞이한 세계인들이 ‘미나리’에 공감하는 이유가 아닐까.

서병기<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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